AT&T, 컴퓨터 시장에서 실패를 맛보다
AT&T는 미국에서 가장 큰 통신사다. 거의 존경받다시피 하는 이런 통신사가 어쩌다 큰 참패를 맛보게 되었을까?
1991년 AT&T는 무려 74억8천만 달러를 내고 컴퓨터제조회사 NCR을 인수한다. 그 후 5년이 지난 95년 말 AT&T는 엄청난 손해를 보고나서 마침내 컴퓨터사업을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AT&T가 NCR을 인수할 당시 AT&T의 컴퓨터사업부는 해마다 불과 2억 달러 정도의 적자를 내고 있었고, NCR은 이익을 내는 회사였다. 그러던 것이 95년 한 해에만 AT&T는 컴퓨터사업에서 24억 달러의 적자를 보았다고 한다. 아마 인수합병의 역사에서 이만한 규모의 실패사례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토록 존경받던 회사가 어찌하여 이렇게 큰 실수를 하였는가?
컴퓨터사업은 오랫 동안 AT&T의 숙원사업이었다. 우선 이 회사는 일곱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적인 연구소 벨랩(Bell Labs)을 갖고 있다. 또한 장거리전화사업에서 매년 200억 달러의 돈이 들어오고 있으며, 하드웨어 생산능력도 상당하다. 이러한 자원을 잘 활용하면 세계적인 컴퓨터회사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라는게 AT&T 경영진의 생각이었다. 더구나 80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는 컴퓨터산업과 텔레커뮤니케이션산업의 구분이 없어질 것이라는 얘기를 즐겨 하였다.
그리하여 AT&T는 정부가 허락하자마자 80년대 중반 서둘러 컴퓨터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AT&T는 컴퓨터시장에서 처음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사실 이 회사는 수십 년 동안 경쟁다운 경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AT&T가 이 시장에서 부딪히는 켬팩, 휴렛-패커드, 선 마이크로 시스템 등의 회사들은 오랫 동안의 치열한 경쟁으로 단련된 막강한 경쟁사들이었던 것이다.
또한 AT&T는 특별한 경쟁우위도 없었다. 우선 이미 일반상품(commodity)에 가까운 PC시장에서는 기술적인 우위가 있을 수 없었다. 또 기업들과의 깊은 관계 때문에 큰 기대를 걸었던 미니컴퓨터시장에서도 AT&T와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부서의 경영자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컴퓨터사업부는 출범하자마자 적자를 내기 시작한다.
AT&T는 장거리전화사업에서 번 돈으로 이 적자를 메우기는 하였지만 무언가 해결책이 필요했다. 컴퓨터사업을 맡고 있던 로버트 알렌 씨는 원가절감을 위해 85년에 2만4천명, 그 이듬해에는 2만5천명의 종업원을 그만 두게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자행진은 계속된다. 85년에서 90년에 걸쳐 이 회사는 컴퓨터사업에서만 약 20억 달러의 적자를 본다. 그리하여 90년이 되자 이제 AT&T의 회장이 된 알렌 씨는 다른 컴퓨터회사를 하나 인수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러자 NCR이 좋은 후보로 떠오른다. 이 회사의 척 엑쓸리(Chuck Exley)회장은 금전등록기 제조회사였던 NCR을 현대적인 전자 및 소프트웨어회사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며, 90년에는 60억 달러가 넘는 매출과 4억 달러의 이익을 올릴 만큼 회사를 알차게 운영하고 있었다. 또한 NCR은 벨랩이 개발한 유닉스(Unix)를 실행(run)하는 컴퓨터에 특히 강했으며, 금융 및 소매업분야에 고객이 많았다.
이 두 분야는 앞으로 텔레컴 투자를 더 늘릴 것이라고 AT&T가 기대를 걸고 있는 산업이기도 했다. 또한 점잖고 보수적인 NCR의 분위기도 맘에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엑쓸리 회장이 NCR의 매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는 NCR이 AT&T의 잘못된 전략의 희생양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NCR이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많은 애를 쓴다.
하지만 AT&T는 시장가격의 배가 넘는 74억 달러를 지불하고 마침내 91년 9월 NCR을 인수한다. 그리고 나서 NCR이 AT&T의 기존 컴퓨터부문을 떠맡기는 했지만, 한동안 큰 변화는 없었다. 즉 NCR은 대체로 종전에 하던 대로 운영된다. 그러나 엑쓸리의 후임인 길 윌리암슨(Gill Williamson)이 이른바 시너지를 찾으려고 할 때부터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윌리암슨은 엔지니어들을 벨랩에 보내 컴퓨터사업에 도움이 될만한 기술을 찾아보라고 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나중에 윌리암슨은 이렇게 회고한다.
“텔레콤장비와 컴퓨터기술은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다.”
그러자 이제는 두 회사가 건물을 공유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하려고 한다. 그러나 AT&T에는 사무직 노동조합이 있었고 NCR에는 없었다. 따라서 각각 다른 규율의 통제를 받는 두 집단이 같은 건물에서 함께 일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또 AT&T는 NCR의 방대한 해외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국제사업을 확충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NCR의 고객은 주로 선진국에 있는 반면에,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텔레콤시장은 대체로 개발도상국에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회사에서 텔레콤서비스를 구매하는 경영자가 컴퓨터도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이제는 NCR이 AT&T의 일부였기 때문에 공급파트너와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테라데이타(Teradata)는 대형소매상들에게서 인기를 얻고 있는 특수데이타베이스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이다. NCR은 이 회사의 기술을 쓰고 있었는데, 테라데이타는 거래를 더 이상 안 하겠다고 위협한다. 테라데이타는 최대고객이었던 AT&T가 이제는 NCR의 제품을 쓸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테라데이타의 컴퓨터는 잘 팔리는 품목이었기 때문에, NCR은 할 수 없이 5억2천만 달러에 이 회사를 사버렸다.
그리고 컴퓨터사업의 거의 1/4을 차지하게 된 PC사업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NCR이 대형컴퓨터부문의 공통비를 부담해 가면서 PC에만 전념하는 컴팩같은 회사와 경쟁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게다가 NCR이 서비스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이른바 오픈시스템과 PC형 컴퓨터를 생산하자 큰 이익을 올리던 서비스 및 컨설팅부문의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못한 AT&T는 드디어 경영에 관여하기로 하고, 93년 초 윌리암슨을 물러나게 한다. 후임으로 임명된 제르 스테드(Jerre Stead)는 전형적인 AT&T사람이었으며, AT&T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려고 한다. 그러나 두 회사의 기업문화는 전혀 달랐다. NCR은 보수적이고 최고경영자가 엄격히 통제하는 회사이며, AT&T는 분권화된 조직이다.
스테드 씨는 조직의 계층수를 줄이기 시작하였으며, 권한을 과감히 아래로 위양한다. 그러나 그 결과 자격없는 사람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진 영업사원들은 매출목표를 달성하기위해 실속이 없는 주문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또 AT&T는 조직을 정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외의 NCR종업원들을 AT&T의 각 지역담당임원 밑에 둔다.
즉 그들은 컴퓨터사업을 거의 모르는 AT&T쪽의 상관과 NCR쪽의 상관 두 분을 모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NCR사람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린 것은 회사이름을 AT&T Global Information Solutions로 바꾼 것이었다. AT&T가 NCR을 인수할 당시의 NCR임원 33명 가운데 95년까지 남은 사람은 다섯 명 미만이라고 한다.
95년초 스테드는 회사를 떠나고 후임으로 필립스전자출신 라스 니버그(Lars Nyberg)가 부임한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다시 NCR로 이름을 바꾼 컴퓨터사업부를 AT&T에서 떼어내고, 이미 예정했던 15%의 인원감축 외에 7천2백명의 종업원을 추가로 해고하는 괴로운 작업이었다. 화려했던 출발과는 대조적인 매우 쓸쓸한 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AT&T가 시장에서 실패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대체로 공격은 방어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공격의 대상인 회사들은 일찍이 자리를 잡은 까닭에 최소한 시장에 이미 알려져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경우 상당수의 고객들이 이들에 대해서 이미 호감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공격을 하는 회사는 일단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격하는 회사는 이러한 불리한 점을 메울 수 있도록 고객들에게 값에 비해 더 좋은 성과, 즉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이다. 예를 들어 잘 알려지지 않은 신제품이 소비자를 끌려면 성능이나 가격 면에서 이미 나와 있는 제품들보다 특별히 나은 점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현재 쓰고 있는 제품을 다른 것으로 바꿀 필요성을 거의 못 느낄 것이다. 공격하는 회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지침은 아래와 같다.
-반드시 뚜렷한 경쟁우위를 갖춘 다음에 공격하라.
-가능하면 상대방이 경쟁우위를 갖고 있는 부문이 아닌 다른 부문에서 경쟁우위를 갖추어라.
-상대방이 강한 부문에서 지나치게 약세를 보이지 말아라.
-상대방이 쉽게 반격하기 어려운 곳을 치라.
AT&T 사례에서 보다시피 회사가 이러한 지침을 무시하고 뚜렷한 경쟁우위 없이 기존의 선발기업을 공격하면, 아무리 AT&T같은 막강한 회사라고 할지라도 결국 실패하고 만다. 반면에 AMD는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갖고 경쟁사인 인텔의 세력이 비교적 약한 세분시장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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